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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재

오래된 가구를 고치는 전통의 의미

by mystory-log-1 2025. 4. 17.

고친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인가

현대 사회에서 고친다는 것은 종종 ‘원래 상태로 돌리는 일’로 정의된다. 기능이 고장 나면 수리점을 찾아 부품을 바꾸고, 낡은 가구는 가구점에서 빠르게 새것으로 교체된다. 하지만 과거의 장인들은 그것을 단순한 고침이 아닌 ‘회복’으로 여겼다. 망가진 가구의 기능을 복원하는 것을 넘어서, 그 안에 담긴 기억과 정서를 함께 살리는 작업, 그것이 바로 전통 목공에서의 수선(修繕)이었다. 수리는 기능적 복구라면, 수선은 삶의 흐름을 존중하는 실천이다. 단순히 나사를 조이고 다리를 다시 붙이는 것이 아니라, 그 가구가 지나온 시간을 살피고, 손때와 흠집을 ‘감추는’ 대신 ‘이어주는’ 방식으로 존재를 다시 살리는 것. 그래서 전통 목공에서 수선은 결코 임시방편이 아니었고, 새로 만드는 일 못지않게 정성을 요구하는 작업이었다. ‘수리(修理)’와 ‘수선(修繕)’은 한자어지만 뿌리부터 다르다. ‘수리’는 기능을 복구하는 기술적인 행위고, ‘수선’은 ‘기운다’, ‘가다듬는다’는 정서적 행위의 뉘앙스를 담고 있다. 즉, 전통 목공에서의 수선은 단지 ‘고치는 일’이 아니라, 그 안에 깃든 마음을 만지고, 다시 이어주는 방식이었다. 이 글에서는 전통 목공 수선의 실제 방식과 철학, 그리고 현대에 우리가 배워야 할 ‘고친다는 것’의 의미에 대해 자세히 살펴본다.

오래된 가구를 고치는 전통의 의미

전통 목공의 수선 방식 – 단순 교체가 아닌 연결의 기술

전통 목공에서 가구를 고친다는 것은 망가진 부분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고장난 부위를 살피고, 그것이 구조 전체에 미친 영향을 함께 보정하는 작업이었다. 예를 들어 서랍장이 열리지 않는다고 해서 단순히 레일을 교체하는 것이 아니라, 수축된 나무, 휘어진 틀, 마모된 맞춤면을 함께 확인했다. 가구는 하나의 유기체처럼 설계되었기 때문에, 부분의 문제는 곧 전체의 흐름과 연결되어 있었다. 특히 짜맞춤 구조의 가구는 부품 하나하나가 서로에게 영향을 주기 때문에, 수선 시에도 원래의 결합 방식을 해치지 않는 방향으로 접근했다. 못을 박아 틀어막거나 본드로 붙이는 대신, 새로운 장부를 깎아 삽입하거나, 기존 홈을 보완하는 방식이 선호됐다. 이 과정은 기계적 수리가 아니라 장인의 감각과 판단이 중요한 작업이었다. 가구를 해체하고 다시 짜맞출 때는, 원래 있던 자리에 다시 맞춰 넣는 것이 중요한데, 이는 오차가 누적되지 않도록 하는 동시에, 가구의 결과 흐름을 끊지 않는 전통적인 수선 방식이었다. 예를 들어 장롱의 문이 뒤틀렸을 경우, 장인은 단순히 경첩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경첩이 왜 틀어졌는지를 목재의 상태, 결의 흐름, 하중의 변화까지 종합적으로 분석했다. 이런 방식은 단순한 AS가 아니라, ‘해석을 통한 치유’였다. 현대 가구의 접착식, 나사 고정 방식은 수선이 거의 불가능하거나 구조 자체를 해체해야 한다. 하지만 전통 가구는 ‘되돌릴 수 있는 구조’를 전제로 설계되었기에, 수선이 곧 재구성의 과정이었다.

세월을 지우지 않는 수선 – 흔적을 감추지 않는 정서

전통 수선의 가장 큰 특징은 ‘흠집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흠집을 품는 방식으로 고친다는 점이다. 오래된 가구의 손때, 기스, 색 바램은 그 가구가 존재해온 시간의 증거였고, 장인은 이를 지우기보다 조용히 감싸 안는 방식으로 수선을 진행했다. 예를 들어 다리가 부러진 의자는 똑같은 나무로 교체하지 않고, 비슷한 톤이지만 약간 다른 질감의 나무를 덧대거나 보강했다. 그 차이를 감추는 것이 아니라, ‘여기엔 한 번의 고침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남기는 방식이었다. 이런 방식은 흠이 곧 역사가 되고, 수선이 곧 기억이 되는 디자인으로 이어졌다. 이러한 수선은 현대의 ‘미니멀’이나 ‘신품주의’와는 거리가 멀지만, 오히려 시간을 축적한 감각적인 결과물로 작용한다. ‘고쳐 쓴다’는 행위가 단순히 아끼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와 더 오래 함께하겠다는 정서적 결심이라는 걸 전통 목공은 잘 보여준다. 이러한 철학은 일본 전통의 ‘킨츠기(金継ぎ)’와도 닮았다. 깨진 도자기를 금으로 이어 ‘흠을 작품화’하듯, 전통 목공의 수선도 흠을 감추지 않고, 되려 존중하며 드러낸다.  한 장인은 말한다. “가장 오래된 부분과 가장 최근에 고친 부분이 대화를 나눌 수 있어야, 그게 진짜 살아있는 가구다.” 이처럼 수선은 단절이 아닌 세월의 연결이자, 고쳐진 흔적이 시간을 읽게 만드는 문장이 된다.

수선의 기술보다 중요한 ‘태도’ – 장인의 손끝에서 배려가 시작된다

전통 목공 수선에서 중요한 건 기술만이 아니었다. 오히려 어떤 마음으로 고치느냐가 더 중요했다. 장인은 고장난 가구를 보면 먼저 손으로 만져보고, 왜 이렇게 되었는지, 얼마나 오랫동안 그 상태였는지, 그리고 이 가구를 누가, 어떻게 썼을지를 상상하며 수선 계획을 짰다. 이러한 수선은 단지 기능 복구가 아니라, 사용자의 삶을 읽는 행위이기도 했다. 가구가 놓였던 위치, 사용 습관, 손의 흔적은 모두 수선의 힌트였다. 예를 들어 서랍 손잡이 옆에 움푹 파인 부분이 있다면, 그 사람은 늘 그 자리에 손을 얹고 열었다는 뜻이고, 그 부위는 다시 만졌을 때 불편하지 않도록 다듬어야 했다. 이건 단순한 기술의 문제가 아니다. 이건 '배려'의 문제다. 그리고 이 배려는 목재의 방향, 결, 무게, 탄성 등을 모두 감안해 손끝으로 완성된다. 즉, 수선이란 결국 다시 쓸 수 있게 만드는 기술이 아니라, 더 잘 쓰이게 만드는 태도였다. 장인은 ‘느림’의 기술을 선택한다. 급히 고쳐 빠르게 쓰게 하기보다는, 천천히 고쳐 오래 쓰게 하기 위해 시간을 견딘다. 그 느림 속엔 고민이 있고, 관찰이 있고, 가장 어울리는 부재를 찾기 위한 기다림이 있다. 그래서 수선이란 단순한 작업이 아니라, 삶의 속도를 되돌아보게 하는 질문이자 명상이기도 하다.

수선의 지속 가능성 – 끝이 아니라, 다음 삶의 시작

전통 목공에서 수선은 끝맺음이 아니라, 다시 시작하는 일이었다. 부러진 다리를 다시 붙이고, 틀어진 문짝을 바로 잡고, 손잡이를 새로 달면, 그 가구는 새로운 시간을 살아갈 준비를 마친 것이었다. 이것은 단순히 오래 쓰자는 차원이 아니라, 가구의 생명력을 되살리는 순환적 사고방식이었다. 또한 전통 목공은 해체와 조립이 가능한 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수선이 전제된 제작 방식이라 할 수 있다. 구조가 잘 짜여진 가구는 여러 번 고쳐도 힘을 잃지 않고, 수선을 거듭할수록 ‘수명’이 아닌 ‘서사’가 더해진다. 이런 수선은 오늘날 ‘지속 가능한 디자인’ 혹은 ‘제로웨이스트 소비’ 개념과도 맞닿아 있다. 단지 자원을 아끼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를 끝까지 책임지고 함께하는 삶의 방식이기도 하다. 전통 수선은 그래서 더 이상 쓸 수 없는 것을 ‘고쳐서 쓴다’는 개념이 아니라, 쓸 수 있는 것을 ‘포기하지 않는’ 삶의 선언이었다.

‘고친다’는 말의 온도를 기억하며

우리는 너무 쉽게 버린다. 가구가 흔들리면 버리고, 서랍이 걸리면 새로 사고, 약간의 흠집조차 감내하지 못한다. 그러나 전통 목공의 세계에서는, 그 모든 ‘불편함’이 다시 손을 얹을 이유가 되었다. 장인은 고치면서 함께 시간을 보낸다. 그 안에는 기술도 있지만, 기억과 존중, 그리고 기다림이 있다. 빠른 교체보다 깊은 수선, 단순한 복구보다 의미 있는 회복. 이것이 전통 목공이 남긴 진짜 가르침이다. 그리고 지금 우리가 다시 배워야 할 건, 나무를 자르는 기술이 아니라 나무를 고치는 마음인지도 모른다. 수선은 결국 삶을 대하는 태도다. 빠르게 버리는 대신 천천히 고쳐서 쓰는 선택, 편리함 대신 정든 것을 이어가겠다는 마음. 지금의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더 많은 것을 바꾸며 산다. 하지만 바꾸는 삶보다, 고쳐 쓰는 삶이 더 강하고 아름다울 수 있다는 걸, 전통 목공은 조용히 알려주고 있다. 그리고 그 철학은 지금도 목공실 어딘가에서, 묵직한 나무 향과 함께 천천히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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