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서는 전통 목공에서 장인이 후각으로 목재를 감별하던 기술과 철학을 소개합니다
나무를 고를 때, 현대인은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져본다. 그러나 전통 장인은 여기에 하나의 감각을 더했다. 바로 ‘냄새’다. 장인은 목재에 코를 가까이 대고 향기를 들이마시며, 이 나무가 어떤 환경에서 자랐는지, 지금 어떤 상태에 있는지를 가늠했다. 그것은 단순한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의 안정성과 내구성, 심지어 공간의 분위기까지 좌우하는 중요한 감별 과정이었다. 목재는 종마다 고유의 향기를 갖는다. 어떤 향은 진하고, 어떤 향은 깨끗하며, 어떤 향은 부패의 징조를 담고 있다. 전통 목공의 장인들은 후각을 통해 목재의 수종, 건조 상태, 습기 유무, 곰팡이 발생 여부, 보존 상태까지 판별할 수 있었고, 심지어 구조물의 용도까지 판단해 냄새로 최적의 목재를 선택했다. 이 글에서는 바로 그 후각의 기술, ‘냄새로 목재를 고르는 장인의 감각’을 중심으로, 우리가 쉽게 지나쳤던 목공의 또 하나의 세계를 깊이 있게 풀어본다. 이것은 단순한 기술이 아니다. 냄새는 기억이며, 감각이며, 장인의 경험이 고스란히 축적된 결과다.
나무의 향기, 감별의 기준이 되다
각 수종은 자신만의 독특한 향기를 가지고 있다. 소나무는 따뜻하고 점착성 있는 수지를 품은 향을, 오동나무는 깔끔하고 차가운 느낌의 냄새를, 참나무는 묵직하고 은근한 내음을 뿜는다. 이 향기는 단지 감각적 느낌이 아니라, 나무의 내부 구조, 수분 함량, 수지 함량, 부패 여부까지 모두 알려주는 일종의 생물학적 신호다. 전통 장인은 이러한 향기를 단순히 ‘좋다, 나쁘다’로 구분하지 않는다. 오히려 냄새의 강도, 향의 유형, 지속 시간 등을 종합하여 그 목재가 어떤 용도로 적합한지를 판단한다. 예를 들어, 향이 진하지만 약간 시큼한 내음이 감도는 나무는 건조가 충분하지 않았거나 내부에 곰팡이가 피었을 가능성이 있다. 반대로 뽀송하고 따뜻한 향이 은은히 오래 지속되면, 잘 건조된 건강한 목재일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냄새 판별은 외형으로 판단할 수 없는 정보들을 제공한다. 특히 내장재, 문살, 서랍 등 습기와 밀접한 가구 구성 요소는 냄새를 통해 내부 상태를 감별하는 것이 필수적이었다. 장인의 코는 그저 냄새를 맡는 감각기관이 아니라, 구조를 예측하고 재료를 이해하는 분석 도구였던 셈이다.
건조 상태를 판별하는 ‘냄새의 온도’
목재는 제대로 건조되지 않으면 쉽게 뒤틀리거나 갈라진다. 전통 장인은 눈에 보이지 않는 수분 상태를 후각으로 판별하는 기술을 갖고 있었다. 목재는 건조가 덜 될수록 냄새가 묵직하고 눅눅한 기운을 동반한다. 장인은 그 향기의 ‘온도’를 느끼며, 겉은 말랐지만 속은 아직 마르지 않은 상태를 감별할 수 있었다. 예를 들어, 바람에 잘 말린 목재는 맑고 산뜻한 향이 난다. 반면, 급하게 불로 말렸거나, 겉면만 말린 목재는 단내와 함께 약간 비린 듯한 냄새가 남는다. 이 차이를 감지하는 감각은 수많은 경험과 비교를 통해 길러지는 기술이며, 장인은 이러한 냄새의 온도를 읽어 목재의 안정성을 판단하고 가공 타이밍을 조율했다. 냄새의 온도는 또한 목재가 어느 정도의 밀도를 가졌는지, 기공이 열려 있는지 닫혀 있는지 등과도 관련이 있다. 장인은 이러한 후각 정보를 통해 지금 이 목재가 대패질이나 톱질에 적합한 시점인지까지도 파악할 수 있었다. 후각은 시간과도 연결된 감각이었다.
곰팡이, 벌레, 부패의 조짐은 코가 먼저 안다
부패한 목재는 그 상태를 외형보다 냄새로 먼저 드러낸다. 장인은 목재에서 약간의 신맛이 섞인 냄새, 비린 향, 또는 곡물 썩는 듯한 냄새가 감돌면, 단면을 열어보기도 전에 이미 그 목재를 제외시켰다. 이는 단지 미감의 문제뿐 아니라, 구조 전체의 수명을 좌우하는 핵심 판단이다. 특히 곰팡이나 진균류는 초기에는 표면에 흔적을 남기지 않지만, 내부에서부터 냄새로 먼저 신호를 보낸다. 장인은 이 미세한 향의 변화를 캐치하여, 사용 전에 벌레 먹음 여부, 내부 부패 가능성, 습기 포집 상태 등을 판단했다. 이러한 감별은 한옥의 주요 부재중 특히 습기에 민감한 장선, 보, 문틀, 창호 등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상태를 판단할 수 있다는 것은, 단지 구조의 전문가가 아니라 재료를 다룰 줄 아는 감각의 장인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후각의 기억 – 장인의 경험이 쌓인 코
장인의 코는 단순한 후각 기관이 아니다. 그것은 수백 가지의 목재 냄새를 구분하고, 기억하며, 판단하는 고감도 센서다. 어떤 장인은 "나무의 냄새를 맡으면 어디에서 자랐는지 감이 온다"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것은 한 번 맡은 향을 절대 잊지 않는 후각 기억이 수십 년간 쌓여 만들어낸 ‘감각의 라이브러리’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어떤 장인들은 냄새만으로 수종을 판별하거나, 같은 나무더라도 절단 시기의 차이를 구분하기도 했다. 이처럼 후각은 단순한 감지 능력을 넘어서, 기억력과 연결된 학습된 감각으로 작동하며, 장인의 경험이 고스란히 쌓이는 통로이기도 하다. 이것은 마치 향수를 맡고 과거의 기억이 떠오르듯, 목재의 냄새는 작업 중이던 공간, 재료의 상태, 계절의 온도까지 함께 기억하게 만든다. 장인은 냄새를 맡으며 과거의 나무를 떠올리고, 그와 같은 특징을 찾아내며 다시 판단을 내리는 것이다. 후각은 기술이자, 감성의 통로다.
공간을 위한 향 – 향기 자체가 재료가 되는 순간
냄새는 단순히 재료의 상태를 알려주는 도구에 그치지 않는다. 전통 장인은 어떤 나무는 그 향기 때문에 공간에 사용하기도 했다. 예를 들어, 편백나무나 소나무는 상쾌하고 살균력 있는 향을 가지며, 특히 실내 공간에서 사용했을 때 쾌적한 공기 흐름을 유지하는 데 도움을 준다. 심지어 과거의 한옥에서는 향기 좋은 나무를 의도적으로 안채나 서재에 배치해 실내 공기 질을 높이고, 심신의 안정까지 고려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러한 감각은 단지 재료 선택이 아닌, 공간에 ‘감정’을 불어넣는 작업이었으며, 후각이 목공을 넘어선 철학으로 기능하던 순간이었다. 장인은 사람의 동선, 공간의 용도, 창호의 위치를 모두 고려하여 향이 퍼지는 방향까지 설계했다. 이는 단지 아름다운 집이 아니라, 감각까지 만족시키는 공간을 만드는 전통 목공의 감성적 완성도를 보여주는 예다.
냄새는 장인의 구조 감각이다
우리는 나무를 볼 수 있고, 만질 수 있고, 들을 수도 있다. 그러나 전통 목공의 장인은 그 모든 감각에 ‘냄새’를 더했다. 그들의 코는 단순한 감각기관이 아니라, 구조를 판단하고, 재료를 구별하며, 공간을 설계하던 또 하나의 도구이자 기억의 창고였다. 냄새로 목재의 상태를 판단하고, 용도를 구분하고, 심지어 시간과 환경까지 읽어내던 그 감각은 지금은 많이 잊혀졌지만, 여전히 유효하다. 우리는 여전히 나무를 쓰고 있지만, 나무의 향기를 기억하지 못한다. 후각은 본능이자 훈련의 결과다. 느린 시간 속에서 축적된 감각은 결국 가장 정밀한 구조를 만들고, 가장 감성적인 공간을 완성한다. 전통 목공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가장 중요한 사실 중 하나는 이것이다. "감각은 기술이다. 냄새조차 구조가 된다."
"이 글은 전통 목공 콘텐츠 전문 블로그 huni-log에서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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