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날의 마루
비 오는 날의 마루비가 내리는 날, 전통 한옥의 마루에 앉아 있으면 세상과 다른 리듬이 흐른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물방울이 기와에 부딪히고, 처마 끝을 타고 떨어지며 만들어내는 소리, 그 소리가 다시 대지로 스며드는 순간의 울림, 그리고 맨발로 디딘 나무 마루의 미묘하게 습기 머금은 촉감이 온몸을 감싼다. 이는 단순한 감각의 체험을 넘어, 인간과 건축, 자연이 하나의 순환 안에서 연결되는 순간이다. 비 오는 날의 마루는 물리적인 공간을 넘어 감각의 무대이자 기억의 저장소로 작동한다. 이곳에서 들리는 소리, 느껴지는 촉감, 바라보는 풍경은 모두 건축적 의도와 전통의 지혜가 녹아든 결과다. 현대 건축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이 특별한 경험은, 한옥이라는 공간이 빗소리와 빗방울, 습기와 바람을 어떻게 ..
2025. 5. 10.
전통 건축이 조절한 공간의 여백
이 글에서는 전통 건축에서 공간의 높이, 즉 '층고'가 어떻게 삶의 밀도와 감각의 여백을 조절했는지를 살펴봅니다건축을 구성하는 가장 기본적인 세 가지 요소는 길이, 너비, 그리고 높이다. 우리는 흔히 공간을 평면적으로 이해하려는 경향이 있지만, 사실 사람은 공간을 '위와 아래', 즉 세로 방향으로도 민감하게 반응한다. 특히 전통 건축에서는 이 '높이', 다시 말해 층고가 단순한 구조적 결과가 아니라, 공간의 성격과 감정, 그리고 머무는 방식까지 조율하는 중요한 설계 요소로 활용되었다. 한옥에서 방의 층고는 결코 천편일률적이지 않다. 방마다, 위치마다, 사용자의 신분과 역할, 그리고 계절과 기능에 따라 높이가 달랐으며, 그 높이 차이는 공간의 밀도를 조절하고 사람의 마음가짐까지 변화시켰다. 층고가 낮은 공..
2025. 5. 8.